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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여인, 피오리나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외신 '피오리나 없는 HP' 대서특필...
요즘 외신을 통해 들어오는 기업뉴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소식은 HP 회장겸 CEO인 칼리 피오리나(Carly Fiorina)가 회장직에서 물러났다는 내용이다. HP가 대단한 업체라기 보다 이 여성회장이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향력 있는 매스컴의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됐다.
지난 6년간 HP의 최고 경영자로 군림하던 동안 피오리나 회장은 '철의 여인'이라는 호칭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컴팩(Compaq)의 인수는 숱한 반대 속에서도 불구하고 '철의 여인'인 그녀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러나 그 작품이 훌륭한 작품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판단은 그녀가 물러난 HP의 역사가 판단할 일이다. 강력한 리더십 속에는 항상 비난이 따르게 된다. 피오리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사회진과의 마찰이 그것이다. 어쨌든 카리스마적인 권위와 강력한 시장주의 신봉자인 피오리나는 지난 8일 이사회의 결정으로 HP의 최고 권좌에서 물러났다.
언론은 '철의 여인'이라고 부르는 것 이외에도 피오리나를 '백만불의 미소(million-dollar smile)를 가진 여자'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은으로 만든 혀와 철과 같은 의지(a silver tongue and an iron will)'의 소유자라고도 한다. 사람이 거대한 조직을 이끌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일 것이다.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는 말이 있다. 입에는 달콤한 꿀을 바르고 뱃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는 말이다. 당나라 현종(玄宗)시대 재상이었던 이임보(李林甫)를 두고 한 말이다. 한시간 명상을 하면 한번에 백 명을 숙청하고 2시간을 숙고하면 2백 명을 죽였다는 재상이다. 안록산(安祿山)도 그를 두려워해 그가 죽고 나서야 난을 일으켰다고 한다. 강하면 부러지기 쉽다는 철칙은 어디서나 통하는 진리다. 그리고 적을 많이 만드는 개혁과 혁신이 얼마나 위험성을 안고 있는지도 가르쳐주는 예다. 최고 경영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외신과 잡지들은 '피오리나가 없는 HP'를 대서특필하고 있다. 비즈니스위크도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그 지면 가운데 '피오리나는 무엇을 잘못했는가(Where Fiorina went wrong)‘라는 기사의 내용을 소개한다<편집자주>.
컴팩 인수했지만 별다른 진전 없어
결국 "옛 첼로연주자"가 옳았다. 컴퓨터와 프린터의 거인 HP의 회장겸 CEO로 6년간 최고 권좌에 있었던 칼리 피오리나는 2월8일 그녀를 해고하고 다른 경영자를 물색할 것이라는 이사회의 발표와 함께 HP를 떠났다.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CEO를 해고함에 따라 HP의 설립자 윌리엄 휴렛(William Hewlett)의 아들이며 첼로 연주를 좋아하는 월터 휴렛(Walter Hewlett)은 자기의 정당성을 방어할 수 있는 호기를 만났다. 월터는 지난 2001년 1백90억 달러에 이르는 컴팩을 인수하면 라이벌 관계에 있는 IBM을 대적할 수 있다는 피오리나의 생각에 대해 강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던 장본인이다.
그러나 의지(意志)의 싸움에서 피오리나가 결국 이겼었다. 컴팩을 인수한 후 HP는 지난 5년간 매출액이 두 배로 불어났다. 그러나 과거의 답습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프린터사업이 매출액의 80%를 차지했고 그것도 잉크 카트리지 교환이 대부분을 차지했을 뿐이다. 결국 컴팩인수로 덩치는 커졌지만 내용상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HP 이사회는 임시 CEO로 재무담당 사장인 봅 웨이만(Bob Wayman)을 지명했다. 피오리나를 대신할 유력한 후보자들 가운데는 마이클 카펠라스(Michael D. Capellas)가 있다. 그는 전직 컴팩 사장으로, 말썽 많은 통신업체 MCI 인수과정에 불만을 품고 HP를 떠났던 인물이다. 다른 유력한 인물로는 경쟁업체인 IBM 출신들이 있다. IBM의 서비스 담당 수석 부사장 존 조이스(Johm Joyce)와 판매담당 수석 부사장인 도그 엘릭스(Doug Elix)가 물망에 떠오르고 있다.
카라스마적 권위, 강하면 적이 많아
그런데 피오리나의 위대한 비전에 잘못된 것은 무엇일까. 경영전문가들은 피오리나는 컴팩 인수를 통해 '할 수 있다는 태도(can-do attitude)'를 가진 진취적인 팀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이 팀은 HP를 결과를 중요시하는 시장주의에 입각한 조직으로 만들어내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 그러나 피오리나의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은 HP의 주식을 대부분 소유하고 있는 주주와 이사진에 그녀의 영업방침을 전달하는데 소홀했고 그로 인해 틈새가 벌어지면서 마찰이 일기 시작했다. 더구나 그녀는 이들과 함께 일하는 노력도 게을리 했다. 경영전문가이며 저술가이기도 한 제이 갈브레이스(Jay Galbraith)의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컴팩 인수때문에 HP로 직장을 옮기게 된 임원들은 직장을 잃게 되었고(jumped ship) 결국 피오리나는 HP에서 중요한 직위에 있던 옛날이나 그 때나 꼭 같은 임원들과 일할 수 밖에 없었다.
경영전문가들은 피오리나와 이사회와의 갈등이 지난 몇 개월 동안 그 수위가 무척 높았다고 말한다. HP의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던 피오리나는 2월 8일 이사진과 폭풍과 같은 회의(stormy meeting)를 갖게 된다. 그러나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나는 이사회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HP의 전략을 수행하는데 있어 그들과는 생각이 다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결정을 존중한다." 최고 경영자의 권좌에서 물러나면서 기자들에게 했던 짤막한 성명이었다. 그러나 피오리나는 빈손으로 HP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2천 110만 달러에 상당한 주식을 보유하고 있고 봉급과 보너스 등 현금을 받게 된다.
컴팩출신과 HP출신을 추스르는 일이 필요
이사회 멤버이면서 새 회장인 패트리시아 던(Patricia Dunn)은 9일 피오리나의 해고를 설명하면서 "이사회는 경영에 보다 많은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을 원하며, 미래를 생각할 때 행동하는 CEO를 선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HP주가 치솟아
월가(街)는 즉각적으로 피오리나의 해고 소식을 환영했다. HP의 주식이 6.8%인 1.36달러가 올라 한 주당 21.50 달러가 됐다. 피오리나의 경영방식으로는 고성능 컴퓨터시장에서 IBM을 따라잡는 것은 역부족일 뿐 아니라 PC시장에서도 델(Dell)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누가 다시 HP의 권좌에 오를지는 모른다. 그러나 성공하기위해서 HP는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감내해야만 한다.
/김형근 객원편집위원
2005.02.14 16:58